시사in 〔기획 기사〕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말도 안 되는’ 높은 진입장벽에 지방 기업 ‘눈물’
입찰자격제한을 최근 3년 내 단일계약 300건 실적 요구
... 사실상 특정 대형업체 ‘일감 몰아주기’ 특혜 의혹
지방에서 산업안전 관련 원가계산 및 컨설팅 연구원을 운영하는 A 대표는 최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이 공고한 ‘산업재해예방시설 자금 융자·보조 지원 설비의 원가계산’ 참여 신청 요건을 보고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신청 자격에 명시된 **‘최근 3년 이내에 단일계약으로 300건 이상의 실적’**이라는 독소 조항 때문이다.
A 대표는 “3년 동안 총 300건을 한 것도 아니고, 단 하나의 계약 안에서 300건 이상의 실적을 증명하라는 것은 서울·수도권의 몇몇 초대형 업체가 아니면 애초에 서류조차 내지 말라는 소리”라며 “이것이 국가 기관이 진행하는 공정한 공모가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단이 진행하는 자금 지원 사업의 원가계산 용역을 두고, 공단이 제시한 과도한 신청 요건이 **지방 업체를 철저히 도외시하고 서울 및 수도권의 특정 대형 업체에만 특혜를 주는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 ‘단일계약 300건’의 함정... 지방 업체는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
문제가 된 조건은 ‘최근 3년 이내 단일계약 300건 이상’이라는 실적 요구다.
산업재해 예방설비의 원가계산 업무는 전국의 수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대다수 지방 업체들은 지역 내 중소 사업장들과 개별적, 혹은 소규모로 계약을 맺고 꼼꼼하게 원가를 산정해 왔다. 전체 누적 실적으로 보면 충분한 역량을 갖춘 업체가 많다.
하지만 ‘단일 계약’으로 묶어 300건 이상을 수행하려면, 전국 단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째로 수주해 본 경험이 있는 서울 중심의 대형 회사가 가질 수 있는 독점적 실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방의 유력 업체들도 1년에 수십 건의 계약을 나누어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 조항은 공모의 문턱을 높인 수준이 아니라, **특정 대형 업체의 실적 맞춤형으로 짜인 ‘스펙’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공공기관이 앞장서는 ‘지방 소멸’... 공정 경쟁은 어디로?
공단의 이 같은 행보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균형 발전’ 및 ‘공정 경쟁’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산업재해는 수도권보다 오히려 제조업, 조선업, 건설업 등이 밀집한 지방 산업단지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알고, 현장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지방 업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이 서울 거대 기업에 유리한 독점적 조건을 내걸면서, 지방 업체들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결국 지역 자금이 서울로 유출되고, 지방의 전문 인력들은 일자리를 잃는 악순환이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셈이다.
지역 경제계 전문가는 “공공기관의 공모는 다양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며, 지역 중소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라며, “과도한 실적 제한으로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은 대기업·수도권 집중 현상을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특혜성 조항 철회하고 요건 완화해야” 목소리 커져
비판이 쏟아지자 일각에서는 공단이 사업 편의주의에 갇혀 실적 위주의 안전한 선택만 하려다 본질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더 철저하고 투명한 원가계산 업체를 선정해야 할 공단이, 오히려 공모 시작 단계부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방의 관련 업체들과 소상공인 연합회 등은 해당 공모 요건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단일계약 기준을 누적 실적으로 완화하거나 지역 제한 분할 발주 등 상생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일터의 안전을 지키는 공단의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서울 대형 업체 특혜 논란’과 ‘지방 차별’이라는 얼룩을 남기게 됐다. 공단이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해 공정하고 상식적인 기준을 재정립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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